사무엘상 18장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다윗은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 푹빠졌습니다. 이 둘의 우정은 이어지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을 칭송하기를 "사울은 수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명을 죽였다"라고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기 좋은 이야기전개입니다. 사울은 직접 다윗을 제거할 수 없고, 다윗을 늘 전방에 블레셋과 싸우도록 보냅니다. 그런데, 갈때마다 승리하고 오니, 사울의 생각과 달리 현실이 녹녹치 않은것을 경험합니다.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에 사울은 시달렸을 것입니다. 통넓게 다윗을 인정하면 좋은데, 막상 백성들이 다윗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왕으로서 이렇게 넓은 가슴으로 다윗을 품을 수 없게됩니다. 질투는 죄의 시작점입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 보면,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늘 경쟁하며 살아왔는데, 이 잘난사람은 내가 없는 것 다 갖춘것 같으니,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좀더 건강하다면, 그것을 크게 받아들일수 있지만, 우리는 보통사람이니 질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전에, 부목사로 있을때, 담임목사님이 늘 제가 한 설교를 들고 다른 곳에서 "우리 부목사님 설교한 내용인데 너무 좋아서 함께 나눕니다."라고 하면서 정말로 제가 설교한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을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은 "아, 부목사가 훌륭하다"하지 않고, 늘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참 훌륭한 담임목사님과 함께하고 계시는 군요" 마음이 넓어져서 질투하지 말자가 아니라, 마음이 넓어지면, 내가 더 인정받는 다는 지혜를 깨달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관계가 힘든것은 이런저런 복잡한 공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근저에 질투라는 것이 자리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크게 먹고 질투를 포기하면, 그 이상의 삶에 큰 자양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요즘 바뀐듯합니다. 어릴적, 일본은 늘 우리보다 훌륭한 민족성, 전자제품, 경제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미묘한 두가지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선진국 일본... 우리의 원수 일본. 그런데, 이제는 일본이 우리를 보고 배워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전제제품은 이미 일본보다 우수하고, 민족성도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고 좋아하는 격을 갖눈 나라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경제력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일본이 우리들 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세대가 한국땅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국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나라, 가고 싶은 나라 등 다양한 수식어가 가득하게 되었는데, 이런 정황에 지속적으로 일본에 뒤쳐져있다는 생각은 우리들을 늘 끊임없이 고여진 틀안에 가두는 생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크게 먹는다는 것은 어찌 어찌 마련된 경계를 그냥 뛰어넘는 것.. 그 경계에 휘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휘둘리면 망가집니다. 스텝은 더 꼬이고, 결국 모자라고 이기적인 삶에 사람들이 주변에 남아있지 않게됩니다. 그러니, 사울이 보여준 삶에 반대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보면, 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우리들의 훌륭한 면모를 보여줄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는 이때, 이 훌륭함으로 불안을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훌륭한 민족이고, 우리 조국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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