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송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마태복음 23장
우릴들은 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기독교인"이라고 이해합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한것이 십자가 사건이후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희생제물이 완성되었고, 이 속죄함을 통해 우리들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구속신앙이 오늘날 기독교를 완성하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분의 삶을 똑같이 살겠다는 결심 (믿음)과 구원의 완성(십자가)이 기독교신앙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이 실랄하게 비판을 하는데, 이들을 향해 예수님이 지적한것은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울뿐, 이 짐을 옮기는데 손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디 율법이 처음부터 이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을 통해 모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더 진지하게 만날 수 있고, 경험하기를 바랬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거룩하게 (구별되어)사는 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목적과 상관없이 율법이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짐이되고, 이 무거운짐을 지적하는 것이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의 주된 일이 되어버린것입니다. 이런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이름이 드러나고, 대접받기 원하고, 높은자리에 앉기를 원하는것을 예수님이 지적합니다. 그리고 으뜸가는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말해, 율법교사와 바리새인..흔히 종교지도자들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결국 이런 결과로, 율법을 완성하는 새로운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율법적인 행위에는 집중하면서, 정의와 자비라는 율법의 중요한 요소는 가볍게 여기게된 종교지도들을 예수님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지금 우리들의 민낯도 드러납니다. 오늘 교회와 지도자들, 교회안에 성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작은교회와 큰교회라는 이름이 존재하고, 큰 교회 목사와 작은교회의 목사라는 명칭이 존재하는 이 현실에 오늘 본문은 정확하게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우리 안에 깊숙히 날아오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 크고 작고에 따라 사람도 크고 작다고 표현하는 시대에 교회도 함께 발을 맞추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도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집중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신앙에 모든 기독교의 본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완성한 예수님의 복음선포, 즉 정의와 자비를 위한 삶도 우리들이 마땅히 구속신앙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해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입니다. 믿음이 크고 믿음이 작고는 우리들이 판단하고 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믿음을 다해 삶을 사는지, 아니면, 믿음이 아닌 기준으로 이땅을 사는지는 우리들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보내는 우리들이 맞이하는 고난주간은 특별하게 와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으심은 "복음"을 완성하고, 남에게 짐을 지우는 짓을 그만두고,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 무관심에서도 그만두고, 정의와 자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생명을 다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해야할입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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