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송가 "십자가를 질수 있나" 마태복음 26장
갑자기 훅들어오듯이 예수님의 담담한 고난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호령하며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다그치셨는데, 그 당당함이 고난으로 다가온다고 하니 이걸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해보입니다. 고난을 예견하시고, 보내는 시간에 예수님의 기대는 무엇이었을까요? 고난과 죽음의 순간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1년에 50번 장례를 치르는 장례식장에 하루에 150번 장례를 처리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뉴욕의 장례식장의 이야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죽의 공포에 노출된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 그리고 그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들과 그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지금 우리들이 보내는 일상입니다. 바이러스의 공포에도 세상이 무너질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고난과 죽음을 예견하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냥 담대하게, "너희를 위해 내가 십자가에 달려 대신 너의 죄를 사하려고 죽게될것이다."라는 마음만 있었을까요? 이래저래 질문만 가득한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상이 단절된 삶에 생각은 많아지고, 황금빛 미래보다 절망과 걱정이 더 크게 떠오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절기에 맞춰, 이때를 기억하며 보내지만, 우리들이 함께 경험하는 이 어려운 시절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죠. 하지만, 무너지는 가슴을 움켜쥔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는 것을 서슴치 않는 모습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밀어넣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책임을 져야할 위치있는 사람들의 언행은 잊지 말아야합니다. 함께 짊어지고 이 긴 터널을 지나면, 지나온 시간을 기억할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 우리의 삶에 가치를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은 그냥 그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때 의미가 있는것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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