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간절한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자기 개인의 소망을 담기 마련인데, 바울은 유대인들이 지닌 관성을 극복하는 것을 소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루틴, 관성, 비슷한 말인데,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묵은때 처럼 자리한 이런것들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습관 혹은 버릇으로도 표현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를 구하는 행위는 지나칠 정도로 그들의 삶을 옭아메고 있는 것을 바울은 간절한 소원을 담아, 진정한 그리스도인 의, 믿음의 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삶이 다양하고, 이해도 다양한데, 모두가 똑같이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진작에 몰입할 수없는 한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해서 형식적인 신앙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을 권면합니다. 요즘에는 믿음있음도 입술로 주여하는 모양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라함은 원래 삶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인데, 입술로 믿음있음만 이야기하는 것은 율법에 메달렸던 유대인과 다를게 없겠지요.. 신앙은 모양과 고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고백한 사랑이 아무런 행위가 없으면 그 고백이 의심받게되는 것처럼, 믿음은 고백과 고백에 따른 진실한 모양이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 교회가 영향력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믿음안에 고백과 행위가 약해져서 벌어지는 경우인듯 합니다. 추석이라고 합니다. 멀리 조국에 풍경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한해를 마무리해 가는 그리고 한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는 명절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민생활이지만, 이번 주일에 송편을 함께 빚어내고 나누어 보려고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원처럼, 어쩌면 우리들의 삶을 옭아멘 관성을 풀어내서 좀더 생동감 있는 삶으로 살아내는 길위에 함께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받을만 하고, 받은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을 행복해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시간이 거침없이 그 때를 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의 흐름도 그저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의 깊은 영적 샘물을 맛보며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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