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죠, "축복과 사명" 흔히 사용하지만 그 만큼 이 의미는 무겁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축복과 사명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아직 신앙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죠..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것은 축복이죠...그런데 그만한 사명도 함께 있는거죠... 제가 말씀드리는 "신앙의 진수"는 이 축복과 사명이 함께 하는 것이지 하나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이방인의 사도이지만, 유대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들어나 보이는 오늘 본문입니다. 율법의 축복은 곧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이다. 이렇게 문장으로 만 쓰면 잘 와닿지 않죠? 그래서 축복과 사명의 차이라는 정학진 목사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축복받는 자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15세 소년의 투병기를 지켜보다가 울었다. 문득 건강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룩한 부담이다. 사명임을 깨닫는다.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교회 서너 명 교인이 전부인 셋방 교회에서 월세 내는 날을 두려워 하는 미자립 교회가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예쁜 건물은 축복이 아니다. 부담이다. 사명이다. 뼈까지 달라붙은 쇠꼬챙이 같이 마른 몸을 하고 목마른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저 어린 것들이 있는 한 하루 세 끼 따박따박 먹는 것은 더 이상 복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다. 잘 먹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할 일이 아니다. 잘 먹게 되어 죄송하다고, 우리만 잘 먹는게 못내 죄송하다고 내가 가진걸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평생 한번도 설교요청을 받아보지 못하고 부흥회 한번 해보지 못한 동역자가 있는 한 더 이상 부흥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빚을 지고 살아왔다. 이 빚을 갚기 위해 뼈를 깎아 보석을 만들고 훈련과 성실로 내 영혼을 맑게 헹궈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가슴아파 울고 있는 교우가 있는 한 더 이상 내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복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고, 칭찬거리가 많은 게 자랑이 아니다. 입 다물고 겸손히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일이다."
0 Commen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