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사무엘상15장
오늘 본문의 사울의 인생포인트 장면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스스로 작은자일때, 왕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손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유명한 말씀은 사울이 왕이 된이 후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생각과 결단이 앞선것을 지적한것입니다. 아멜렉에 대한 진멸법을 무시한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소와 양을 멸하지 않고 챙겨두었다고 하지만, 이를 사무엘은 지적한것입니다. 누가봐도, 죽이기 보다, 살려두어서 재산으로 혹은 제물로 드리면 딱 적당한데, 하나님은 이를 순종과 교만함의 잣대로 보고 있다는것이 사무엘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눈에 읽혀지는 것은 전쟁에 승리한 사울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된것을 사무엘이 지적한것이고, 이후에 사울의 삶은 이로 인해 완전히 눈밖에 난(?!) 인생 포인트 지점이 오늘 본문입니다. 한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조심스럽게 진정국면에 접어든것처럼 보이고, 미국은 이제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교회가 예배를 강행했다가 코로나바이러스 집단감염이 발병하자, 눈물을 흘리며 목회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죄송함을 언론을 통해 알렸습니다. 일은 벌어졌고, 아마 예배를 강행한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곧 믿음의 표본이기 때문에 그리한듯한데, 그 강건한 믿음..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는 멈춰서는 안된다는 그 강경함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 강하다는 표현을 우리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이 약할때,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울이라면, 여기서 우리들이 확인해야할 것은 내가 약할때, 강함은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이지 내가 채워서 그것을 완성하려고 할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사울이 잘못한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을 자기의 생각과 의지 혹은 합리적, 이성적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내 믿음이라는 것을 채웠기 때문에 그 안에 하나님의 역사하실 공간을 소멸시킨것이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은 통행 제한령이 내려졌습니다. 새벽예배, 주일예배, 성경공부등의 모임은 필수적인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모일수 없고, 영상예배를 준비를 위해 이동하는 경우는 비영리단체의 운영지침에 허락되어집니다. 이 모든 이동경로는 경찰이 확인하고 이런 조건에 맞지 않는 이동을 할시에는 벌금을 물어야하는 강력한 행정명령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식당은 to go 만 가능하고, 마트는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 교회와 목회자들 평신도지도자들은 걱정스러움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 우리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교회는 어찌할것인가? 어떻게 대비할것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됩니다. 아무도 가본적이 없는, 경험이 전무한 이런 상황에 불안함은 더 커집니다. 당연한것이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 마트에 사재기가 극성하고, 이는 더 불안함으로 우리를 몰아세웁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이 빈틈에 하나님이 일하실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모든것을 해결해 보겠다고 바둥대다보면, 내가 이것을 다 조절해보겠다고 무리하다 보면, 불안함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바르지 않은 방향에 놓일 수 있습니다. 불안함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 잡기 전에, 이 부족함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할 신앙의 자세인듯합니다. 돌아보고, 더 비워내고, 그러면 그 부족하고 비어있는 곳을 하나님이 가득채워주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역사하실것입니다. 세상 좋은건 다 나온 지금이지만, 바이러스에 우리들은 두려워하고, 이를 인종차별로 이용하고, 불안함은 누구때문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으로 세상과 담쌓게 하려고합니다. 지금, 교회는 더 낮은 자세로 하나님이 일으켜 세울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야합니다. 하루종일 고민하며 보냅니다. 이럴때, 교회는 무엇을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도울수 있을까? 기도속에 떠오로는 생각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함께, 더 든든히 함께 이 시간을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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