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양 "나의 등뒤에서" 사무엘하 16장
점입가경,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도망하여 환대와 멸시를 만나고 있고, 압살롬은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 두 인물사이에 아히도벨은 특이한 인물입니다. 다윗의 모사였고, 바셋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은 다윗의 신임을 받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압살롬의 지략가로 변신합니다. 이런 변화는 당혹스럽죠, 다윗의 모사가가 갑자기 다윗의 적인 압살롬의 지략가 되어서 등장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후궁과 동침하기를 압살롬에게 청합니다. 정복과 통치의 영역에서는 이런 잔인함과 무모함이 존재하는가 봅니다. 다윗에 대한 책을 보면,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즈음 다윗은 무기력함을 보였을것이라고 합니다. 어릴적 부터 양치기로 고독감에 노출되고, 오랜 도망자의 시간을 보냈던 다윗에게 우울감이 몰려왔을 것이라는 것이죠.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긴 지평을 경험한 자들에게 짐작할만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응을 보면서, 점입가경이 떠오릅니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에 대해 자와자찬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적을 막기 위해 영주권발급을 60일 금지시키겠다는 발상은 결국, 자신의 재선을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자들을 집결시키고, 결국 갈등의 골을 크게 만들어 재선에 성공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은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호모사피엔스가 인류를 장악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차분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창조론가 진화론의 논쟁에서 벗어나서, 그냥 한 역사학자의 역사적 상상력의 통찰로만 보면 제법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사피엔스의 저력은 경계를 넘어선 진취적인 이주에서 시작되었고, 무엇보다도 언어라는 의사소통으로 세계를 장악했다는 것입니다. 동물도 자신들의 언어로 신호를 나누지만, 사피엔스는 구체적으로 언어로 표현하고, 이상적이고, 상상의 범위에까지 즉 보이지 않는 것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세상을 장악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학자의 상상력의 범위에서 보면, 트럼프는 단절을 조장하고 단순한 언어로 복잡함과 상상력 그리고 이상적인 문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저 욕망에 충실한 존재와 관심에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고귀하게 쌓아온 방향을 무너뜨리고, 물질과 이기적 욕망을 자극해서 재선에 성공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 아히도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있겠죠. 미국이 정말로 위대한 미국이 되려면, 단절과 분열, 단순함과 욕망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둘러 살필 능력을 보여주어야겠죠. 비겁하게 자기만 살겠다고 뒷걸음 치는 것을 보면, 결국 위대함의 허상은 빨리 드러날것 같습니다. 지도자의 역량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을 경험한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방향과 답을 줍니다. 오늘 읽은 본문으로 여기까지 생각하게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기껏 재선해야 5년 더 하는거에요..영원한것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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