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양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사무엘하 12장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이 타이밍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냈다는 것은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봐야할지, 아니면 회복을 위한 기대로 봐야할지 궁금합니다. 선지자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에, 나단은 첫번째 선지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선지자입니다. 주로 선지자의 이미지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활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단의 예언은 꽤 문학적으로 날카로우면서 훌륭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선, 나단은 가난한 자와 부자를 비유로 설명하면서, 다윗의 분노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분노의 대상이 바로 "다윗"임을 지적합니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구조는 대상자의 자기 뉘우침을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잔소리를 짜증나는데, 충고는 화나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단이 이야기를 통해 다윗을 통렬하게 비판을 하니, 이걸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왕이라는 권위로도 어쩔수 없는 권위에 순종하고 있다는 의미일것 입니다. 나단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신뢰했습니다. 나단의 이야기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다윗에게 있었으니, 나단의 지적에 그대로 무너진것입니다. 사람의 이야기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할 수 있으면 좋은데, 쉽지 않은 과제임에도, 다윗은 나단을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라고 확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다윗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양을칠때, 하나님을 찬양했고, 도망다닐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서, 어느정도 안주했을때,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것도, 결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나단의 지적은 제법 다윗을 당혹스럽게 했고, 다윗에게 내제되어있던 불편함, 혹은 죄의식을 충분히 이끌어냈습니다. 하나님이 숨겨두었던 다윗의 중심을 드러내신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꽁꽁 숨겨왔던 내 삶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무너져서 드러납니다. 이게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늘 함께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내 모든것이 드러내 보여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에 깊이 새겨져야하는 기본중에 기본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다윗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고, 다윗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왕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통해 내 자신이 환희 드러내 보여지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누가 누구를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걸 모르는 존재나 남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가벼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내 자신이 온세상에 환하게 드러내는 것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믿음을 가진 자의 바른 모습이겠죠.
0 Commen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