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에 갈등은 세상갈등 못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생리가 그런것인지 아니면 우리들이 죄인이라 그런것인지 몰라도 교회 다툼이 한번 일어나면 대단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목격했을때, "아니,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일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은데, 요즘에는 익숙해진(?!)듯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과 믿음이 약한사람, 절기를 지키는 관점, 유대인과 이방인등 갈등의 요소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여기서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갈등은 "내가 그래도 너보다 잘안다"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가르칩니다. 먹어야 되는 음식과 먹지말아야 하는 음식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지적합니다. 더 많이 아는 것이 힘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참 어리석은 생각일것같습니다. 어느 초등학생이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잔소리는 기분나쁘고,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 초등학생치고는 벌써 인생의 한 경지에 이른 듯한 말입니다. 솔직함이 이 아이에게 베어있습니다. 모든 갈등의 출발점은 여기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복잡함이 있는 로마교회를 향해 바울이 던진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유는 주를 위한 것"에 방점을 찍습니다. 삶은 복잡합니다. 아무리 단순하게 살려고 해도 관계를 하다보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관계를 포기하겠다는 분도 더러 보게 되는데, 그만큼 관계가 쉽지 않기때문입니다. 이 복잡함을 관통하는 지혜는 더러는 모르는척, 혹은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될것 같은데, 아는척하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복잡함을 관통하는 바울의 지혜는, "주를 위해 사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이야기하는 곳이지, 내 가 아는 것을 자랑하는 거나, 나를 드러내거나, 내 잘남을 표현하는 곳이 아님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결국 우리들이 기대하는 삶은 이런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이래야합니다." 우리들이 많이 듣고 많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 삶에서 실현되려면, 결국 복잡함을 넘어서는 단순함으로, 교만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가을이 성큼 다가온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니 몸과 마음도 설레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늘 반복되지만, 지루하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그 날 그날이 반갑고 좋습니다. 이 날에 성령이 주시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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